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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의 생활 이야기] “휠체어, 버스에 타다”

박혜진 칼럼리스트 | 기사입력 2011/10/30 [06:47]

[박혜진의 생활 이야기] “휠체어, 버스에 타다”

박혜진 칼럼리스트 | 입력 : 2011/10/30 [06:47]
우리 동네에서 내가 자주 타고 다니는 노선버스는 장애우가 탑승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앞문, 뒷문에 계단이 없고, 문의 폭도 넓고 열리는 방식도 다르며 접었다 펼 수 있는 장애인용 좌석도 있다. 장애인을 위해 낮은 위치에 버저도 있고, 장애인 전용 손잡이도 있으며 휠체어 바퀴 고정 장치도 있다. 물론 3년 가까이 타고 다니면서 실제로 장애인이 탑승하는 건 보지 못했다.

혼자 생각에 ‘과연 저 모든 장치들을 사용하면서 휠체어나 장애우가 탈 수 있을까?’하고 의문이 들었다. 어떤 차에는 ‘장애인용’이라는 스티커를 누가 장난삼아 떼어서 ‘애인용’이 되어 있어 실소를 자아내며, 바퀴 고정 장치는 먼지가 소복하게 쌓여 있으니 막상 필요할 때 작동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무엇보다 이 차에 휠체어는 어떻게 올라올까 하는 게 궁금하였다. 아무리 평평한 차 바닥이라지만 정류장에 바짝 댄다고 해서 휠체어가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난 내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한 여름, 햇볕이 유난히도 뜨겁던 날 여느 때처럼 버스는 정류장에 손님을 태우러 멈춰 섰다. 그런데 정류장에 휠체어를 탄 여자가 있었다. 그 버스를 탈 모양인지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여자가 앞문으로 다가왔다. 정류장과 버스 사이가 너무 멀어서 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자 버스기사가 기다리라고 하고 뒷문이 열렸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고 난 내심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여자는 안 되면 그냥 가시라는 휠체어 탄 여자의 말을 전했다. 버스기사는 기다리라며 계속 무언가를 운전석에서 조작하시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버스기사가 버스 운전을 시작한 이후에 처음 맞이하는 장애우 손님이라 작동법이 미숙한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드디어 뒷문 바닥에 숨겨져 있던 철판이 천천히 나와서 정류장과의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아하! 버스와 정류장 사이를 철판이 이어주어 휠체어가 편안히 올라오게 하는 장치가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제서야 휠체어 탄 여자는 뒷문으로 올라타고 일행은 앞쪽에서 요금을 내주고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미 버스 안 좌석은 장애인석뿐 아니라 다 차 있었다. 휠체어가 탔으니 장애인석 의자를 접어 바퀴를 고정시켜 장애인 전용 손잡이를 잡아야 안전하게 갈 텐데……. 그러나 정작 뒷문 바로 앞에 있는 장애인석 손님은 일어날 기미조차 없었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휠체어가 옆에 와서 휠체어 자체의 잠금장치를 걸고 버스의 기둥을 잡고 있는데도 말이다. 유심히 보니 그 여자는 하체뿐 아니라 말도 어눌하고 팔도 편하지 않은, 온몸이 자유롭지 않은 지체 장애우였다.

난 내 자리라도 양보하고 싶었으나 뒷자리는 장애우가 있을 수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버스 안 4개의 장애인석 손님 어느 누구도 그 여자를 위해 양보할 것 같지 않았다. 그 여자도 그런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버스를 타고 가는 것으로 보아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닌 듯했다. 버스기사도 그 전보다는 속도도 줄이고, 급정거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장애우를 위해 운전을 조심조심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분보다 먼저 내렸으니 목적지까지 무사히 잘 가셨을까 걱정되어 내내 생각이 났다. 개인적인 호기심을 푼 일이었지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던 일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양보했을까? 그 자리는 평소 딸이랑 그 버스를 타게 되면 내가 가장 선호하는 자리이다. 옆으로 몸을 조금만 돌려면 버스카드단말기가 있어서 딸을 안고 움직이지 않아도 미리 편하게 카드를 찍고 하차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자리이다. 그 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갑자기 나도 자신이 없어졌다. 전에 아이를 안고 탄 나에게 앞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없어서 정류장을 출발하기 시작해서 흔들리는 차안에서 아이와 뒷자리까지 가느라 진땀 뺀 적이 있다. 만약 내가 양보하고 일어섰는데 다른 자리가 없어서 그 때처럼 서서 가게 된다면 아이랑 위험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니 나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마음의 짐이 줄어드는 듯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외출하려고 또 그 노선버스를 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장애우가 이미 버스에 승차해 있었다. 건장한 남자분인데 아마도 다리가 불편한지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분은 다행히도 장애인석 좌석을 접고 전용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목적지가 몇 정거장 더 남았는데 내리겠다고 버스기사에게 말했다. 버스기사는 더운데 왜 미리 내리냐고 걱정하고, 그 남자는 괜찮으니 내려서 횡단보도 건너서 조금 휠체어 타고 가는 게 더 빠르다고 하고. 버스노선이 빙 돌아서 가니 본인은 가로질러 가겠다는 것이다. 버스 기사는 뒷문을 열어주며 조심하라고 내내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연이어서 휠체어를 실은 버스를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또 가득했다. 장애인의 날을 정해두고 그날은 방송마다 장애우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보고를 한답시고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쳐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 그러나 그날이 지나가면 그뿐이다. 장애우 복지에 대해 우리 사회는 딱 하루, 장애인의 날에만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장애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이다. 버스에 힘겹게 타는 장애우를 보면서 그의 불편을 걱정하기보다는 버스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왜 나와서 돌아다녀서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느냐고 눈 흘기는 사람이 그 버스 안에 있으니 말이다. 비장애우인 우리들이 볼 일을 보기 위해 외출하는 것처럼 그들도 직접 나와서 다니면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인데 집을 벗어나기만 하면 장애우의 몸도 마음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인 듯하다.

우리나라 장애우의 대중교통 이용률은 아주 미약하다. 이렇게 장애우가 탈 수 있는 버스가 다양한 노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극히 제한적이다. 우리 동네에만 해도 20개 정도의 노선버스가 다니지만 장애우 승차 버스는 3개 노선뿐이다. 그 3개 노선도 방향은 비슷하니 갈아타려고 해도 계단 있는 버스들이 많아서 결국 택시를 타야할 것이다. 어떤 지하철역은 1층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바로 지하철을 타는 것이 아니라 다시 계단을 올라가서 타야하는데 문제는 플랫폼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이다. 나도 보고 당황스러운데 실제로 장애우나 노인분들이 이용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싶었다. 물론 계단을 오를 때 도와주는 리프트가 맨 구석에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작동이 잘 될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사정이 이러니 외출을 하고 싶어도 쉽게 할 수 있겠는가? 세상과의 벽을 실감하고 몸도 마음도 지쳐 버리겠지.

그리고 건물 입구나 상점 앞 계단에도 요새는 경사로를 만들어 두었다. 그런데 이 역시 실효성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난 휠체어는 아니지만 가까운 곳을 갈 때 딸을 유모차에 태워 나간다. 집 앞 은행에 갔을 때 일이다. 경사로가 있긴 한데 유모차를 뒤에서 힘껏 밀고 올라야 할 만큼 정말 경사가 급했다. 휠체어를 탔다면 혼자 힘으로는 절대 못 올라갔을 것이다. 올라가다 뒤로 넘어가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게 형식적으로 만든 무성의한 경사로였다. 언젠가 뉴스에서 보니 건물 경사로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나왔었다. 일반인이 다니는 계단 바로 옆에 그 경사 그대로 직선으로 만든 경사로. 그 불량 경사로도 장애우들에게는 넘지 못할 큰 벽이니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건물 입구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늦게 들어가더라도 완만하게 돌아가는 곡선 경사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바로 그것이다. 장애우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니라 불편하지 않게 움직이는 것이 필요한 사람이다. 우리와 함께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내야 하는 안타까운 구성원이기도 하다. 내가 편하다고 해서 그들이 편한 것이 아닌데 내 기준에서 ‘이만하면 됐겠지?’하고 만족하는 건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그 예의를 어떤 한 날을 정해놓고 차리는 것도 안 된다. 늘 돌아보면서 필요한 것을 살펴봐야 한다. 똑바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왜 똑바로 볼 수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 앞을 막아서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육체로는 치우기 힘들지만 우린 치워 줄 수 있는 건강한 육체를 가졌으니까. 우리의 건강한 마음과 육체로 그들의 고단한 육체를 보듬어 줄 수 있으니까.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 행복한 삶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사회의 편견과 외면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닌데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사회를 사는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소수 사용자를 위해 장애우 편의시설을 준비하는 것이 번거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대우를 해 주기 위함이 아니라 장애우들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당연한 배려이며, 기본 권리를 행사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인식뿐 아니라 현실적 관심이 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계단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우리나 빙 돌아서 천천히 들어가는 장애우 모두에게 행복한 외출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졸
- 이화여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과정 수료
- 프리랜서 논술 강사 및 진유헌 보습학원 부원장 역임
- 現 육아와 겸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박혜진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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