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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색찬란한 ‘나전칠기’와의 인생

중요무형문화재 제 10호 보유자 이형만 장인

이예지 기자 | 기사입력 2011/12/08 [15:35]

[인터뷰] 오색찬란한 ‘나전칠기’와의 인생

중요무형문화재 제 10호 보유자 이형만 장인
이예지 기자 | 입력 : 2011/12/08 [15:35]
(뉴스쉐어=강원본부) 우리나라 조가비만큼 고운 빛깔을 내는 것도 없다. 오색찬란한 이 빛깔에 매혹돼 40여년간 나전칠기에 혼신을 다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보유자 이형만 장인을 만나 나전칠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나전을 붙인 후 지짐질 하는 모습                         (사진=원주옻문화센터 제공)

장인의 땀

조가비(조개껍데기)를 얇게 깎아 만든 것이 자개다. 자개를 여러 문양으로 잘라 기물에 붙인 뒤 그 위에 옻칠을 하여 만든 기물이 나전칠기(螺鈿漆器)이다. 나전칠기는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성장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나전장 제10호 중요무형문화재 이형만 씨는 매일같이 아침 8시 개인공방에 나와 평균 밤 12시까지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15시간 정도 작업에 열중한다.

종이에 연필로 문양을 모두 그린 뒤 몇 번의 수정작업을 거쳐 완성된 그림을 다시 투명한 유산지에 옮겨 자개에 동일한 문양을 그린다. 자개에 그린 하나하나의 문양을 실톱으로 잘라 칠기 표면에 붙이는 이 모든 작업은 보통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나전칠기는 대개 20여 가지의 공정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데 크기에 따라 빠르면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제작 기간이 소요되며 길게는 3년까지도 걸린다.

이렇게 오랜 작업시간보다 더 애쓰는 것은 장인의 마음에 드는 오색찬란하고 질 좋은 국산 조가비를 구하는 일이다. 이형만 씨는 “바다 속에서 시달리며 자란 자연산 전복만이 가장 고운 오색 빛깔을 낸다. 하지만 해상오염 탓인지 조가비가 점점 소모되고 있어 재료 구하는 일에 난관을 겪고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놨다.

소중한 ‘인연’

“내가 아무리 잘났다 해도 김봉룡 스승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나전칠기와의 인연도 없었겠죠. 40여 년 가까이 스승을 모시면서 내 아버지보다 더 깊은 情을 느꼈어요”

1946년 경남 통영군(현 충무시 또는 통영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형만 씨는 중학교 진학을 위해 시험을 치러야 했던 찰나 얘기치 못한 부상으로 시험에서 누락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무상으로 중등교육을 제공하는 경남공예기술원 양성소에 들어가 그의 스승 故 김봉룡 옹을 만나게 되면서 나전칠기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1963년 경남공예기술원 양성소를 졸업한 이형만 씨는 개인공방을 만들어 양성소를 나간 김봉룡 옹의 간택을 받아 따라 나서게 된다. 그 후 1대 1 수업을 통해 나전칠기의 전통 기법을 전수 받으면서 김봉룡 옹과의 소중한 인연도 시작됐다.

이형만 씨는 “작업하라고 붙들어 놓으면 도망가기 일쑤였고, 사고 쳐놓고 냅다 삼십육계 줄행랑 치고 바다 가서 해떨어질 때까지 낚시하다 오고 그랬죠. 때론 ‘허허’하며 웃는 스승 얼굴도 떠오르고…”라며 추억을 더듬는다.

이형만 씨는 1970년 군복무를 마치고, 당시 질 좋은 옻칠을 찾으러 강원도 원주로 개인공방을 옮긴 김봉룡 옹을 인사차 찾아갔다 함께 작업하자는 스승의 권유로 원주에 정착하게 됐다.

그는 “스승이 작고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아이들도 낳고 이 일을 계속 이어가다보니 눌러앉아 이젠 원주 사람이 다 됐다”고 껄껄 웃으며 또 다른 이야기들을 이어 갔다.

사제 간의 추억을 듣는 내내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그리워지는 시절이 아닌가 싶다.

100%의 대물림

“내가 생각하는 스승이란 물려받은 기술을 훼손되지 않게끔 그다음 후대에 100% 대물림해 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나전은 주로 장식품을 비롯해 장롱과 같은 여러 생활용품으로 만들어져 70~80년대 말까진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80년대를 지나면서 주거문화가 점점 아파트 위주의 생활로 바뀌면서 장롱의 필요성이 줄어들자 더 이상 나전칠기 농이 설 자리가 없어져 갔다.

이형만 씨는 “현재 작품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남아 나전칠기의 명맥을 이어가고 요즘엔 유물복원 쪽으로도 많이 집중하고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건 태조임금이 썼던 옥책함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지요”라며 뿌듯해 한다.

지난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충남 배재대 칠예과에 초빙교수로 출강했던 이형만 씨는 현재 개인공방에서 약 8명의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형만 씨는 “다들 열의를 갖고 찾아와 배우고 있다. 때론 제자들에게 내가 배우기도 한다”며 겸손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그는 우리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당부했다. 우리가 먼저 우리의 것을 인정하고 자긍심을 가져야 세계만방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지난 1994년 93세의 나이로 작고한 스승 김봉룡 옹의 뒤를 이어받은 이형만 씨는 현재 제자들을 비롯하여 가족들과 합심해 나전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아내와 여동생은 생활용품으로, 장남 광웅 씨는 이수자로, 둘째 아들 상훈 씨는 전수 장학생으로 그의 기업을 이어가며 전통문화의 빛을 밝히고 있다.
 
강원본부 = 이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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