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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품지 못한 비련의 여인 허난설헌, 그녀의 정신 기린다

허난설헌 문화제, 생가터에서 열려

정필근 기자 | 기사입력 2012/04/08 [19:44]

시대가 품지 못한 비련의 여인 허난설헌, 그녀의 정신 기린다

허난설헌 문화제, 생가터에서 열려
정필근 기자 | 입력 : 2012/04/08 [19:44]
(뉴스쉐어=강원본부) 건강과 가족의 불운으로 인해 44세부터 세상을 떠난 56세까지 외부 출입을 전혀 하지 않았던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 그녀는 좁은 마당에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속박되지 않은 채 자유로웠다. 죽기까지 그녀가 남긴 시는 1,700여 편이 넘지만 그 중 겨우 10편만이 생전에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견될 만한 여류 작가가 있다. 중국과 일본에 여성작가로는 최초로 한류문화를 전파했지만, 살아 생전에는 그 천부적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고난의 연속으로 27살에 단명한 여인. 본관은 양천 허씨, 본명은 초희지만 허난설헌(1563-1589)이라는 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임진왜란(1592) 전인 조성중기. 연산군 이후 4대사화와 훈구, 사림간의 당파 싸움으로 인한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당시 사회는 여성에게 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았지만 동인의 최고 당수였던 아버지 허엽은 딸의 재주를 아껴 글을 가르쳤다.
 
난설헌의 동생인 허균(1569-1618)을 포함해 아버지와 자녀들이 모두 문장에 뛰어나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허씨 5문장(허엽, 허성, 허봉, 허난설헌, 허균)이라 불렀다.
아버지 허엽은 송도3절이라 불리는 화담 서경덕의 영향을 받았고, 난설헌은 둘째 오빠인 허봉의 글벗, 곧 이달에게서 글을 배웠다. 서경덕은 학문과 덕이 드높았지만 초야에 살면서 벼슬을 하지 않았고, 이달은 허균의 소설 홍길동과 같은 서얼출신으로 벼슬을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자유분방하게 글을 썼다. 난설헌의 시도 이들의 영향을 받아 도교적 측면과 자유분방함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녀의 생애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시대 천재 여성의 불운한 삶

▲  허난설헌의 초상화                (그림제공=허난설헌 생가터 )
난설헌은 15세무렵 안동 김씨 집안의 김성립(1562-1592)에게 시집을 갔다. 그의 집안은 5대나 문과에 급제한 명문 문벌집안이였다. 그러나 그는 계속 낙방하였고 난설헌이 죽던 해, 병과로 급제했다. 글솜씨가 뛰어난 난설헌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기생집에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난설헌 사후에 재혼했고 임진왜란으로 전사한 후에도 본처와 합장하지 않고 후처와 합장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문제가 난설헌의 처신 문제라고 보았고 고부갈등은 심했다. 설상가상으로 18세때 아버지 허엽이 경상감사로 지내다 병이 들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상주 객관에서 죽자 집안은 기울기 시작한다. 서로 사이가 좋았던 둘째 오빠인 허봉은 강직한 성격으로 율곡 이이를 탄핵했다가 유배. 그 후 병으로 객사. 난설헌의 딸과 아들 또한 한해 차이로 나란히 병사. 그 후 뱃속에 있던 아이마저 유산했다.

그녀는 평소 3가지 한을 말했다고 한다. 조선 땅에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김성립에게 시집간 것. 이 3가지가 그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현모양처인 전형으로 추앙받는 신사임당(1504-1551)은 허난설헌과 거의 동 시대를 살았다. 신사임당은 약 60년 전 같은 강릉지역 인물이다.
 
하지만 신사임당의 경우 그저 평범한 지방사림의 무남독녀로 출가 후에도 친정에서 지냈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자질과 실력을 인정할 줄 아는 도량 넓은 사나이여서 신사임당은 그녀의 소신과 개성을 펼칠 수 있었다.. 허난설헌은 신사임당같은 편안한 분위기도, 뜻을 펼칠 만한 환경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들 딸을 잃은 고통보다 더 컸던 허난설헌의 남편에 대한 원망, 그저 시대를 묵묵히 수긍해야하는 한명의 ‘조선 여성’이였던 그녀는 품은 애환으로 눈물의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자신의 안타까운 처지, 시로 승화해

난설헌은 낭군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인, 몰락해 가는 명문 가문의 식솔, 자식을 잃은 어머니였다. 더욱이 자신의 뜻을 펼치고 싶어도 펼칠 수 없는 숨막히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답답함, 갈등, 그리움, 아픔과 괴로움 등을 글로 승화시켰다.

四時詞 : 春 사계절을 읊음 : 봄

院落深沈杏花雨 고요하고 깊은 정원에 살구꽃은 비처럼 지고
流鶯啼在辛夷塢 꾀꼬리는 목련꽃 핀 언덕에서 지저귀네.
流蘇羅幕襲春寒 술이 달린 비단 휘장 안에는 아직도 찬 봄기운이 스며들고
博山輕飄香一縷 박산 향로에선 향내음이 하늘거리누나.
美人睡罷理新粧 미인은 잠에서 깨어 곱게 단장하고
香羅寶帶蟠鴛鴦 고운 비단 옷에 원앙새 새긴 패물을 찼어라.
斜捲重簾帖翡翠 비취 박은 겹발을 비스듬히 걷어 올리고
懶把銀箏彈鳳凰 은 거문고 잡고 하염없이 봉황음을 타는구나.
金勒雕鞍去何處 황금 굴레가 박힌 안장 얹고 님께선 어디로 가셨나요.
多情鸚鵡當窓語 정다운 앵무새는 이 창가에서 지저귀는데
草粘戱蝶庭畔迷 풀숲에서 놀던 나비는 뜨락으로 사라지더니
花罥遊絲闌外舞 난간 밖 아지랑이 피어나는 꽃에서 춤추고 있구나.
誰家池館咽笙歌 뉘 집 연못가에서 들려오는 생황 노래가락에 목이 메는데
月照美酒金叵羅 달빛이 금빛 술잔 속의 향긋한 술을 비추고 있구나.
愁人獨夜不成寐 시름 많은 여인 밤새 홀로 잠 못 이루었으니
曉起鮫綃紅淚多 먼동이 트면 명주수건에 눈물 자국만 가득하리라.

望仙謠 선계를 바라보며 노래함
 
王喬呼我遊 신선 왕교(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선인)가 함께 노닐자고,
期我崑崙墟 곤륜산에서 나를 기다렸다네,
朝登玄圃峰 아침에 현포 봉우리에 올라서,
望遙紫雲車 멀리 붉은 구름 수레를 바라보았네.
紫雲何煌煌 붉은 구름은 밝고도 밝은데
玉蒲正渺茫 옥포는 그저 아득하구나.
숙忽凌天漢 홀연히 은하수 넘어서,
飜飛向扶桑 해뜨는 부상(해가 뜨는 바다 속에 있다는 신성한 나무)을 향해날아가니,
扶桑幾千里 부상 몇 천리 되는 그곳,
風波阻且長 풍파가 길을 막아 더욱 멀구나.
我慾舍此去 이처럼 어려운 길 버리고 싶지만,
佳期安可忘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어찌 놓치랴.
君心知何許 그대 마음 어디쯤 있는지 알기에,
賤妾徒悲傷 내 몸은 더욱 슬프기만 하여라.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고운 미모에 성품도 어질었다. 그녀는 또한 화관을 쓰고 향로와 마주 앉아 글을 지었다고 한다. 속박된 삶속에 그녀는 갇혀있는 듯 보였지만, 그녀의 영혼은 이미 신선인 양 자유로웠다. 그녀의 세상에서 놓아지듯 그렇게 27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지만 죽음의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유언으로 난설헌은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달라 하였으나, 누이의 솜씨를 아까워 했던 허균은 글을 남겨 두었다.

한류문화로 꽃핀 난설헌의 문학세계

추후 정유재란 때 온 명나라 사신 오명제에게 허균은 난설헌의 시 200여편을 보여주었고 이시가 ‘조선시선’, ‘열조시선’ 등에 실렸다. 1606년는 허균이 중국사신 주지번에게 시를 모아 주었고 중국에서 먼저 ‘허난설헌집’이 먼저 출간되었다. 중국문인들의 최고의 찬탄을 받은 난설헌의 시는 조선에 역수입 되고, 낙양의 종이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기도 했다고. 1711년에는 일본에 소개돼 분다이야 지로베이가 그의 시를 간행하였고, 애송하였다. 난설헌의 시집은 중국, 일본, 조선을 통틀어 당대 최고의 시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남성상위라는 사회통념 상 난설헌의 시는 잊혀졌다. 1940년에서야 소설가 월탄 박종화 선생이 난설헌의 시와 작품성을 평가하며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개인의 슬픔이 아닌 시대적 아픔, 후세에 물려서는 안돼

허균 허난설헌 선양사업회는 8일부터 오는 15일까지 ‘난설헌, 세상이 알다’라는 제목으로 난설헌 문화제를 하고 있다. 유선기 총무이사는 “난설헌은 최초로 국제적으로 알려진 여류 시인으로, 시대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유로운 글을 썼다. 그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정신은 현 시대의 이미지와도 맞다”며 “난설헌이 풀어야 했던 봉건적 숙제들이 아직도 여권신장이란 문제로 아직도 남아있다”고 전했다. 또한 유 총무이사는 “동호회, 시낭송, 백일장, 시화전 등으로 허난설헌을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  허난설헌 문화제 백일장에 참석한 사람들이 시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제공=허균 허난설헌 선양사업회)
 
8일 행사는 허난설헌 생가터에서 수공예체험, 시화전, 백일장, 들차회 등이 진행되었으며, 최문희 작가초청으로 아마추어 시인과 시민들의 만남을 가졌다. 그 외 난설헌 국제 작가전은 15일까지 진행된다.

강원본부 = 정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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