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쉐어 NewsShare -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정론!

‘죽음으로도 막을 수 없다’…독립운동가 박상진

광복회 총사령…판사직 버리고 독립운동에 뛰어 들어

박정미 기자 | 기사입력 2015/09/15 [16:45]

‘죽음으로도 막을 수 없다’…독립운동가 박상진

광복회 총사령…판사직 버리고 독립운동에 뛰어 들어
박정미 기자 | 입력 : 2015/09/15 [16:45]
▲ 울산시 북구 송정동에 위치한 박상진 의사의 생가     © 박정미 기자

 

"다시 태어나기 힘든 이 세상에 다행히 남자로 태어났건만 이룬 일 하나 없이 저 세상에 가려하니 청산이 비웃고 녹수가 찡그리네"


이 시는 독립 운동을 하다 일본에 체포돼 사형 판결을 받은 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가 대구형무소에서 쓴 옥중 절명시다.


울산박물관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을 기획, 특별전을 열고 있는 가운데 그 중 울산 출신의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가 재조명 받고 있다.


박상진 의사(1884~1921)는 울산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한학을 접했고 영남 지역의 유학자로 의병운동을 일으킨 허위의 수하에서 반외세적 민족의식을 키웠다.
 

1910년 박상진 의사는 판사시험에 합격해 평양법원에 발령됐지만 경술국치로 조국이 일제의 완전한 식민지가 되자 이를 망설임 없이 포기하고 독립운동의 길을 걷는다.


1915년 대한광복회를 설립한 박상진 의사는 비밀사수, 암살, 폭동, 명령 절대 엄수의 4가지 행동강령을 바탕으로 국내와 만주를 연결하는 독립운동기지 구축, 군자금 모집, 친일파 처단, 독립군 양성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여러 활동을 하다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득고 고향으로 오는 도중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38세의 젊은 나이로 대구 형무소에서 순국한다.


이런 박상진 의사의 독립정신을 엿볼 수 있는 박상진 의사의 생가가 울산시 북구 송정동에 위치해 있다. 1997년 울산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됐고 2007년 복원 정비사업을 완료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박상진은 생부 박시규의 장남으로 출생했지만 100일 후 백부집으로 양자를 가게 되는데 현재 송정동에 위치한 생가는 100일부터 박상진 의사가 살았던 백부의 집인 셈이다.


박상진 의사 생가 해설을 맡은 해설사는 “대한광복회의 4대 강령 중 하나가 ‘비밀’이었기 때문에 신돌석, 김좌진 등에 비해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며 “판사라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몸과 재산을 독립을 위해 바친 박상진 의사를 존경하고 이렇게 훌륭한 분을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선선한 가을, 아이들 손잡고 박상진 의사 생가를 방문해 다시 한번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버린 분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그분들의 희생의 터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는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

 

  • 도배방지 이미지

이동
메인사진
'수지맞은 우리' 함은정X강별, 두 자매의 숨 막히는 옥상 대치 ‘흥미진진’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