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는 것이... 맞는가? - 13층 .by 박하얀

The Thirteenth Floor
 
 이런 생각들 많이 하잖아요. 삶이 고단하다 느껴질 때, 혹은 곤경에 처할 때, 이것이 꿈이기를 바라는 마음.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없던 일로 바뀌기를... 삶이 평탄하게만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일종의 의식처럼 나이가 들수록 엄습하는 고통을 겪어내고 있습니다.

 유희거리들, 게임이나 드라마, 영화, 음악, 미술 등의 것들은 우리들을 위로해주고는 하죠. 더 이상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문화생활을 제 2의 업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살기가 더욱 힘들어지니, 치열한 삶과는 동떨어진 것들을 찾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     © 박하얀 칼럼니스트.

 영화 <13층>은 가상현실에 대한 내용입니다. 줄거리를 말씀드리자면,

 주인공 ‘홀’은 잠에서 깨자, 집안에 널브러진 핏자국에 놀라고 맙니다. 그리고 ‘풀러’가 밤사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좀처럼 지난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홀. 그는 죽기 전 풀러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남겼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풀러가 만든 가상현실에 접속하여 그가 남긴 메시지를 찾아 나서는데요...

 이 영화의 제목이 ‘13층’인 이유는 주인공 홀이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장소가 바로 빌딩의 13층이기 때문입니다. 수비학적으로 불길함이라든가, 미지의 것을 내포하고 있지만, 우선 이 영화의 스토리에 접근을 한다면, ‘13’이 아닌 ‘층’이라는 장소에 주목을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13층)는 과연 진짜인지, 진짜로 가장한 가상은 아닌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현실이 아닌 가상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영화는 너무나 많이 봐 왔습니다. SF작품들의 대표적인 클리셰가 아니던가요. 같은 해에 영화 <매트릭스>가 나왔습니다. 이 영화와 비슷하게도, “현실 안에 가상, 가상 안에 현실“을 보여줍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매트릭스는 진짜 현실을 보여주지만, 13층은 진짜 현실인 가상현실을 보여주네요. 장자가 꿈에 깬 것이 매트릭스라면, 꿈 안에서 혼란을 겪는 것이 13층일 테죠.

 이 삶이 꿈만 같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 자체가 현실은 불행하다는 뜻이겠죠. 끝도 없는 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어쩌면 우리는 마약에 취하듯 괴로움을 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러한 SF영화가 다른 이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겪는 갈등과 환상을 스토리까지 붙여서 보여주죠.

 이곳이 가상임을, 자신조차 가상임을 알게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가 한 행동과 태도가 현실의 고통에 면역되어 절로 반응하는 가상(허구)의 것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되는 거겠죠.

▲     © 박하얀 칼럼니스트.

 
 이 영화가 시작할 때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유명한 말이죠. 나는 진짜의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 나만의 가상을 만들었다면, 지금 이곳은 그 가상을 겪는 곳일까. 객관적으로 나를 관조할 수 있는가.

 이 세상이 살기 편해진 만큼, 정서는 벼랑 끝에 몰려 가상에서 헤매는 것만 같습니다.

 이곳은 13층입니다. 여기는 현실일까요, 가상일까요. 이 질문을 하게끔 만든 자들과, 이 경계에 서게 된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