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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행]‘설레임 품고’…문수산 산림욕장 산책로 따라 느껴지는 역사의 향취

문수산성, 문수산과 강화 해협을 지키는 요새

정혜영 기자 | 기사입력 2016/03/18 [15:22]

[봄여행]‘설레임 품고’…문수산 산림욕장 산책로 따라 느껴지는 역사의 향취

문수산성, 문수산과 강화 해협을 지키는 요새
정혜영 기자 | 입력 : 2016/03/18 [15:22]
▲ '문수산성' 사진 우측에 해안쪽으로 연결돼 있던 성이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 과의 전투로 흔적 조차 없이 사라졌다.   


[뉴스쉐어=정혜영 기자]‘김포의 금강’ 이라고 불리는 문수산이 봄을 맞은 3월  탐방객을 기다리고 있다.


동쪽으로는 한강과 서울의 삼각산, 서쪽으로는 멀리 인천 앞바다, 북으로는 개풍군이 한눈에 내려다 보여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끌기도 한다.

 


문수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동서남북이 모두 절경이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으며 힘찬 기운을 느낄 수 있는가 하면 해지는 서해 바다와 강화도의 모습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평화누리길’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지만 실제는 한반도에서 평화와는 가장 거리가 먼 곳 중 하나로 역사적으로 봐도 전쟁을 연상케 하는 신미, 병인양요의 산 증인이 되는 유적지다.

 


성벽을 따라 올라가 좌우에 펼쳐지는 전망을 보면 이곳이 전략적으로 요충지가 되는 이유를 짐작케 된다.


정상에서 느끼는 역사의 향취 문수사는 신라 혜공왕때 산 정상에 창건된 문수사(文殊寺)라는 절에서 유래됐으며 1964년 사적 제139호로 지정됐다.


문수산 산림욕장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 홍예문을 거쳐 정상에 오르면 문수사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된 풍담대사부도 및 비를 만날 수 있다.

 

▲   홍예문


문수산성은 해발 376m 문수산의 험준한 줄기에서 해안지대를 연결한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갑곶진과 더불어 어머니의 품처럼 강화 해협을 껴안고 입구를 지키는 요새다.

 

숙종 20년에 축성됐고 순조 12년에 대대적으로 중수됐는데,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여장(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둘렀다.


당시 성문은 취예루, 공해루 등 3개의 문루와 암문(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앉은 성문터)이 있었다. 이 가운데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구실을 했다.

 

▲  조선 말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의 전투가 벌어졌던 산성.

 

문수산성은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른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의해 프랑스 선교사들이 희생을 당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은 군함 7척, 대표 10문, 병력 1천을 거느리고 조선에 침입해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조선에서는 순무영을 설치하고 양헌수(梁憲洙)를 천총에 임명해 강화도를 수복케 했으나, 벌어진 문수산성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가진 총포의 위력을 당해낼 수 없어 패배했다. 이때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모두 파괴됐다.


프랑스군은 성내 민가를 불태우고 유린했다. 이 격전으로 해안 쪽 성벽이 파괴되고 문루가 모두 불타 없어졌다. 총 6km에 이르는 산성 중 4km가 남아있는 지금은 마을이 들어섰으며 문수산 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구한말 외세 침략에 저항했던 민족의 역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산 교육장 문수산성. 산 정상에 올라 절경을 이루는 전후 사방을 내려다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하다.


[출처:김포문화관광 http://tour.gimpo.go.kr/culture/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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