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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3.1운동 함성 ‘군산’서 되살아나다

한강 이남 최초 만세운동…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작년 개관

이연희 기자 | 기사입력 2019/02/24 [17:52]

100년 전 3.1운동 함성 ‘군산’서 되살아나다

한강 이남 최초 만세운동…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작년 개관
이연희 기자 | 입력 : 2019/02/24 [17:52]

 

▲ 전북 군산시 구암동에 자리잡은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 이연희 기자

 

“자네가 군산에 이 문서를 전달해 주게나.”

 

1919년 2월 26일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현 연세대 의과대학) 재학 중이던 김병수 학생은 세브란스병원 제약실에서 근무하던 이갑성으로부터 한 문서를 전달받게 된다. 그는 전북 군산시로 내려와 모교였던 영명학교(현 제일중·고등학교) 스승에게 그 문서를 전달했고 이는 호남지역에서 항일항쟁 운동을 지피는 불씨가 됐다. 김병수 학생이 가져온 문서는 바로 ‘독립 선언서’였다. 

 

[뉴스쉐어=이연희 기자] 2019년은 3.1운동이 100주년을 맞는 해다.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일어난 만세운동은 군산에서 시작됐다. 이 운동을 군산 3.5만세운동이라고 부른다. 

 

당시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영명학교 박연세·이두열 교사는 거사를 계획하고 독립선언서 3500매 복사본과 태극기 수백 장을 그리는 작업을 비밀리에 한다. 3월 6일(음력 2월 5일) 서래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학교 교직원, 학생, 구암병원 사무원, 신자와 일반 시민까지 합세해 사전 모임의 결의와 준비를 한다. 

 

하지만 3월 4일 새벽 군산경찰서의 일본인 무장 경찰 수십 명이 출동해 주모자 박연세·이두열·김수영·고석주·송정헌 등을 구인(拘引)하고 거사는 사전에 발각된다. 

 

김윤실 교사를 중심으로 격분한 학생은 모여 만장일치로 잡혀간 교사를 석방하기 위해 첫 만세 시위운동을 펼쳤다. 일본 경찰은 1차 학생 시위를 진압하고 주동자를 유치하는 진압을 벌였다. 

 

3월 5일. 진압에 자극을 받은 학생과 영명 남학교, 멜본딘 여학교(현 영광중·고등학교) 교사와 학생, 구암 예수병원 사무원, 구암교회 교인 등이 합세해 백여 명으로 시작된 시위는 500여 명으로 늘어났고 운동은 5월까지 계속됐다. 

 

이렇게 군산 3.5만세운동은 총 28회에 걸쳐 일어나 3만 1500여 명이 참여해 53명이 목숨을 잃었고 부상자 72명, 투옥자 195명이 발생했다. 당시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200여 명이나 더 많았고 일본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군산의 상황을 생각해 봤을 때 자주독립의 확고한 의지를 꽃피운 군산 시민의 애국애족 정신은 이 시대가 본받아야할 모습이다. 

 

▲ 강제연행 후의 구치소 모습을 재현한 코너. 당시 군산경찰서는 1910년 일본총독부령에 의해 전북도 경무부 군산경찰서가 설립됐다. 당시 경찰서는 3.1운동 때 많은 군산시민들이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 당하거나 부상당했던 곳이었다.     © 이연희 기자

 

1919년 3월 31일 군산 3.5만세운동으로 구속된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에 대한 공판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원 법정에는 아침 일찍부터 방청객이 밀려왔다. 체포된 30여 명의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이 재판장으로 들어서는 순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분에 찬 방청객이 만세를 외쳤다. 만세를 외친 방청객도 모두 체포돼 법정소란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독립운동가는 당일에 모두 졸속으로 형을 받게 된다. 

 

비폭력 무저항 의거인 군산지방의 3.5 독립 만세운동은 전주·광주·목포·익산 등지로 파급되면서 호남지방 항일 저항운동의 시금석이 됐고 기독 단체를 비롯한 일반인에게도 독립의식을 일깨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군산시 구암동에 있는 ‘군산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은 100년 전 역사 속 그날이 잊히지 않도록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기념관의 외관은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을 상징해 영명학교를 본뜬 모습이다. 

 

▲2층 역사 재현실 입구(위)와 1층 추모의 벽 모습. 벽에는 3.5 만세운동 참여자와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기록됐다.    © 이연희 기자

 

1층에는 ‘독립의 빛’으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지사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만세운동의 주축이 됐던 영명학교와 근대교육과 선교사, 선교스테이션 등을 소개한다. 추모의 벽을 조성해 3.5만세운동에 참여한 분과 독립에 힘쓴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나열했다.

 

2층은 직접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그 날의 함성을 느낄 수 있는 역사 재현실로 마련됐다. 

 

3.5만세운동을 주모한 죄로 체포됐다가 복역한 뒤 신사 참배 거부와 식민지 정책에 부합하지 않은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다시 체포된 박연세 독립운동가가 재판장에서 했던 독백을 재현한 내용을 들을 수 있다. 

 

‘그들과의 이어짐’이라는 주제로 구성된 3층에는 탁본으로 태극기 만들기를 하면서 거사를 계획하며 태극기를 만들었던 그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게 했다. 

 

▲ 3층에 마련된 겨레의 함성 코너에는 일본군의 총알을 피하며 자전거를 타고 만세운동을 전파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 이연희 기자

 

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기 위해 미션을 수행하는 미로체험 등이 준비돼 만세운동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독립군 의상을 입고 기념 촬영도 할 수 있다. 

 

한편,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은 작년 6월 개관했다. 평일과 주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고 월요일과 신정·설날·추석날에는 휴관한다. 관람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과 군인은 7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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