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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한글박물관 3.1운동 100주년 특별 전시… ‘한글이 목숨’
한글 창제부터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쓰기까지
 
장선주 수습기자 기사입력  2019/03/04 [07:01]

▲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들의 모습     © 장선주 수습기자

 

[뉴스쉐어=장선주 수습기자]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한글이 목숨전시를 개최했다. 지난달 25일부터 630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한글 창제부터 일제의 탄압을 거쳐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한글의 역사를 담았다.

 

지난 3일 오후 3시 국립한글박물관 2한글이 목숨전시실 입구에서부터 특별 해설을 시작했다. 이날 해설에는 아이와 함께 온 가족, 친구와 방문한 직장인 관람객 등 약 15명이 참여했다.

 

전시관 중앙에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전시돼 있었다. 큐레이터의 해설에 따르면 훈민정음 해례본은 행방이 묘연했던 가운데 1940년에 발견됐다. 1443년 세종대왕은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어리석은 백성들이 자기 뜻을 펴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우리 문자를 창제했고, 한글의 자음·모음의 창제 원리와 용법을 훈민정음 해례에 기록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간송 전형필 선생은 당시 기와집 10채에 해당하는 값으로 해례본을 사 우리나라 해방까지 이 해례본을 지켰다.

 

해례본의 발견으로 한글이 분명한 유일 언어이며, 인체 발음기관을 본떠 만든 언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9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됐다.

 

이후 1894년 고종이 한글을 나랏글(공식 문자)로 선포하고 1904년 한글 표기법 통일을 위한 국문연구소가 설치됐다. 이후 1909년 주시경 선생 등 연구위원들이 한글 표기법 통인안인 국문연구의정안을 제출했으나 다음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며 실현되지 못했다.

 

1921년 주시경의 제자들이 우리말글을 지키고자 조선어연구회를 창립하고 31년 이름을 바꾼다. 바로 조선어학회. 조선어학회는 한글 맞춤법, 표준어 정리, 국어사전 편찬 작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연구 활동을 했다. 이번 전시 제목인 한글이 목숨또한 1931년 조선어학회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이 음식점 방명록에 남긴 문구다.

 

그러나 일제가 1938년부터 우리말 교육을 금지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하기 시작하면서 4년 뒤 조선어학회를 강제 해산 시키고 33명의 회원이 투옥됐다. 이들은 광복 이후 석방돼 연구 활동을 재기했고 활동은 오늘날 한글학회까지 이어져왔다.

 

한글이 목숨전시는 우리말글이 곧 우리의 정신이라는 일념으로 각고의 노력으로 한글을 연구하고 지킨 역사를 담았다. 전시 특별 해설은 3월 말까지만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진행한다.

 

이날 6살이 된 딸과 함께 전시관을 찾은 김모(35·)씨는 처음 관람 왔을 때 해설 없이 봤는데 오늘은 해설을 들으니 아이도 더 집중하며 들은 것 같다고까운 시선과 일제 탄압 속에서도 한글을 지켜내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준 선인들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한글의 역사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배우니 우리말글에 대한 자긍심이 더욱 생겼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한글박물관은 명절을 제외한 공휴일을 포함해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며 토요일과 매월 마지막 수요일만 밤 9시까지 연장 개방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외국어 해설은 수요일 영어, 목요일 중국어, 금요일 일본어 각 오후 2시에 진행된다.


기사입력: 2019/03/04 [07:01]  최종편집: ⓒ NewsShare 뉴스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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