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미 기자 기사입력  2019/04/10 [20:37]
제주의 아픈 얼굴 ‘무명천 할머니’
제주 4.3사건 모티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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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란희 작가의 그림책 ‘무명천 할머니’    

 

[뉴스쉐어=박정미 기자] “턱에 총탄을 맞고 쓰러져 평생을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살았던 할머니가 있습니다. 턱이 없어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물 한 모금 마실 때도 흉측해진 얼굴을 감춰야만 했습니다.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린채, 평생을 약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던 진아영 무명천 할머니는 제주의 아픈 얼굴입니다.”


정란희 작가의 그림책 ‘무명천 할머니’의 한 대목이다. 제주 4.3사건 70주년 쯤에 출판된 이 책은 해방후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제주 4.3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무명천 할머니는 제주 4.3사건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한 할머니의 이야기이자 제주 도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탕탕탕’ 마을에 들이닥친 토벌대는 총을 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명과 겁에 질린 아이들의 울음이 곳곳에서 들렸다.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몸을 숨겼다. 들키지 않으려고 우는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김을 감추려 검은 흙에 얼굴을 묻었다. 눈 앞에서 집이 불타도 누구 하나 끄러 갈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이다.


몸을 숨긴 채 날이 새기만을 바라던 어린 아영이 몸을 일으켰다. 아영은 집을 가리키며 음식 먹는 시늉을 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아영은 텃밭을 가로질렀다. 곡식 항아리를 들고 텃밭을 향해 달려 나가는 순간 아영의 얼굴이 거대한 쇠몽둥이에 휘둘려 맞은 듯 뒤로 확 꺾였다.


무명천 할머니는 경찰이 무장대로 오인해 쏜 총에 턱을 맞고 쓰러졌다. 총탄에 너덜너덜해진 턱을 가위로 잘라내고 겨우 목숨만은 건졌다. 하지만 평생 약 없이는 견딜 수 없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흉측해진 얼굴을 하얀 무명천으로 가리고 아픔과 외로움과 슬픔을 견뎌낸 진아영 할머니. 턱을 잃어버린 할머니는 말을 할 수도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혹시 자신의 흉한 얼굴이 보일까 봐 몸을 돌리고 구석에서 혼자 밥을 먹어야 했다.


할머니는 밤이면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악몽을 꿨다. 낮에도 누군가가 총을 겨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덜 떨었다. 옆집에 갈 때조차도 문을 잠궜다. 할머니는 이런 끔찍한 고통과 아픔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홀로 외롭게 살다 돌아가셨다.


한편 제주 4.3 사건은 1947년에서 1954년까지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서 3만여 명의 도민이 군경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 그동안 4.3의 진실은 수면 아래 감춰져 있다가 2000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섬 제주. 그 이면에는 잊어서는 안될 아픔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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