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미 기자 기사입력  2019/05/17 [06:08]
독립운동도 함께한 부부 독립운동가 김규식, 김순애
정부, 두 선생에 대한민국장과 독립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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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쉐어=박정미 기자] 국가보훈처는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인 올해 김규식·김순애 선생 부부를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남편 김규식 선생은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을, 아내 김순애 선생은 한국애국부인회장을 지내며 독립에 힘을 보탰다.


▲파리강화회의 파견된 남편 김규식 선생


1881년에 태어난 김규식 선생은 189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로아노크 대학에서 수학하고 프린스턴대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1904년 귀국했다.


귀국 후 김규식 선생은 1906년 대한자강회 회원으로 강연을 통한 구국운동을 전개하다가 1913년 11월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거기에서 박달학원을 설립하고 한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1919년에는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파견돼 각국 대표와 언론인들에게 독립운동 홍보문서를 배포하며 한국인의 독립 열망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1942년 10월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보선됐고 1944년 부주석에 취임해 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세력과 협력을 통해 조국 광복을 이뤄냈다.


이후 1950년 북한군에 납치돼 그해 12월 70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항일 여성독립운동 전개한 아내 김순애 선생


1889년 5월 황해도에서 태어난 김순애 선생은 1909년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에 김규식 선생과 결혼했다.


결혼 후 1919년 7월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와 지원을 목적으로 상하이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임시정부가 자금난을 겪자 1926년 7월 임시정부경제후원회에 참여해 임정의 재정지원 활동을 했다. 간호원양성소를 설립, 다수의 간호인력 양성·배출을 주도하며 전쟁에 대비하기도 했다.


이후 1930년 8월 상하이에서 김윤경·박영봉 등과 함께 한인여자청년동맹을 결성해 한국독립당과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온 선생은 1946년부터 1962년까지 모교인 정신여자중·고등학교 재단 이사장과 이사 등으로 활약하며 여성교육에 공헌했다.


정부는 두 선생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김규식 선생에게는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김순애 선생에게는 1977년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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