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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순수하고도 진정성 있는 ‘소리’에 대한 사랑 …소리꾼 현미

5살 때부터 발견된 천부적 재능…역경과 고난 속 다듬어진 그녀의 이야기

박예원 기자 | 기사입력 2016/06/24 [10:48]

[인터뷰] 순수하고도 진정성 있는 ‘소리’에 대한 사랑 …소리꾼 현미

5살 때부터 발견된 천부적 재능…역경과 고난 속 다듬어진 그녀의 이야기
박예원 기자 | 입력 : 2016/06/24 [10:48]
▲ 5살부터 타고난 재능에 선생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소리꾼 현미. 인고의 시간을 거쳐 소리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소리하는 목적 확고해져가     © 박예원 기자

 

[뉴스쉐어=박예원 기자]"레스토랑 가면 같은 포크라도 먹는 음식마다 쓰는 게 다 다르잖아요.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별처럼 빛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삶의 밑바닥, 그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고 위로해주는 그런 소리꾼인 것 같아요"

 

'소리'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빛나던 그의 눈망울은 인상적이었다. 판소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소리꾼 현미(39).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겸손하지만 자신감 있게, 담백하지만 따뜻하게 풀어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17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금상, 16회 KBS 국악대경연 판소리부문 장원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현 국악계 최연소 대통령상 2관왕 수상자이기도 하다.

 

"5살 때 이웃집 할아버지를 따라 목포시립국악원에 놀러 다녔어요. 당시 판소리방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따라하던 것을 판소리 선생님께서 들으시곤 ‘소리는 네가 해야겠구나’라고 하신 게 계기가 되어 소리를 시작하게 되었죠.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천 명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애라며 예뻐해 주셨었고, 저도 제가 잘 하는 줄 알고 있었어요(웃음)"

 

타고난 재능 덕에 어릴 적부터 많은 선생님들이 좋아했고, 탐내왔다. 그러나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판정받고, '절대 소리를 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에 결국 노래를 중단했다. 12살 이란 어린 나이에 성인 수치의 네 배가 나올 정도였으니,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다. 목은 턱과 목의 경계가 없어질 정도로 부었고 안구돌출에 얼굴변형도 찾아왔다.

 

"당시 제가 살던 목포에서 갑상선은 치료도 안 되는 병이었어요. 사실 그 때는 노래가 싫증 날 때쯤이어서 어린 마음에 노래를 그만해도 된다는 게 좋았었죠. 하지만 6개월도 안 가더라고요. 소리가 하고 싶어 죽겠는 거예요"

 

▲ 소리꾼 현미는 앞으로 전통을 지키며 현재를 이야기하고, 세상에서 낮고 힘없는 자를 위한 '진정성'있는 소리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 박예원 기자

 

20살이 되어서야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병원에서는 이미 심장과 폐에 엄청난 무리가 가 있고, 조그만 무리나 스트레스도 받아선 안 된다며 계속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저는 소리를 못하는 게 스트레스고, 못하면 죽을 것 같다 했죠"

 

그렇게 다시 시작하게 된 소리에 그녀는 미친 듯이 연습했다. 그런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독하다'고 했다. 하루 종일 입을 벌리고 살았다고 표현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게 된 것도, 어느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던 그녀가 '소리꾼 현미'로 인정받을 길은 대회 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서다.

 

"한번은 콩쿠르를 준비하다가 대회 1등이 정해져있다는 소식을 듣고 포기하려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동안 스스로 학비 벌고 독학해가며 어렵게 공부했는데 이미 정해져있는 판에 굳이 내가 나가야 하나 싶었죠. 그런데 어느 날 책을 보다가 이런 메시지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네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그걸 하기 위한 조건과 상황, 환경이 갖춰있을 때가 언제 있냐'라는 거예요. 제가 봤을 땐 내년에도 아니었거든요. 그럼 앞으로도 아닌 거예요. 그래서 그냥 나가서 부딪히자 마음먹었죠"

 

그녀는 그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었다. 1등으로 정해져있다고 한 사람이 출전도 안 했던 것.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제가 그 말만 듣고 시도를 안 했으면 그 상은 제 것이 아닌 거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연단이 된 것 같아요"

 

현재 예술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바닥소리와의 인연도 그녀에겐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였다. 2002년부터 시작한 바닥소리 활동은 삶의 목적과 소리하는 목적, 예술가로써 어떤 음악과 어떤 예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관을 바꿔 주었다.

 

"사실 소리를 다시 시작하게 됐을 때는 옛날의 명성을 다시 찾고 싶었고, 여러 사람들의 기대, 그런 것들을 빨리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싶었죠. 그런데 바닥소리는 그런 저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놨어요. 레스토랑에 가면 같은 포크라도 먹는 음식마다 쓰는 게 다 다르잖아요. 무대 위에서 별처럼 빛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삶의 밑바닥, 그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고 위로해주는 소리꾼인 것 같아요"

 

전통을 지키며 현재를 이야기하고 시대를 포용하는, 그리고 세상에서 낮은 자, 힘없는 자를 위한 '진정성'있는 소리를 하겠다는 현미. 그녀는 앞으로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면서 더 깊고 풍성한 음악들을 시도해 갈 계획이다.

 

"그동안 수많은 고비 앞에서 다듬어지고 만들어진 게 지금의 저예요. 그 기간들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렇게 소리를 사랑하지 않았을 거예요. 계속해서 무언가 가지려고 했을 거고, 더 유명해지려고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 판소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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