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sns기사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고]아동 폭력 예방에 최적화 된 ‘행복한 1분 꾸지람’
3장, 화를 내는 이유
기사입력: 2016/07/11 [16:14] ⓒ NewsShare 뉴스쉐어
황수남 칼럼니스트

2) 일어난 일, 사건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오류 때문

 

▲ 황수남 칼럼니스트     ©

인간의 삶은 한시도 쉬지 않고 생각이 일어나고 항상 외부의 사건 사고를 만나게 되며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인간이 느끼는 외부의 상황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인간은 외부에 일어난 일을 실재(實在)로 존재한다고 잘못 믿는 경우가 많다. 일어난 일이 실재로 맞는지, 또 왜 그렇게 보이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면 화가 나지 않는데 그렇지 못하기에 화를 내고 불행해 한다. 그렇지만 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면 인간에게 발생하는 화 비롯한 모든 불행을 해결할 수가 있다.
 
『먼저 일어난 일이나 사건들은 그냥 일어난 일이나 사건 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어난 일에 자신의 분별심이라는 그릇된 욕심에 가려 일어난 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욕심이라 불리는 분별심에 대해 알아보면, 대개 사람은 병원에서 검사한 후 의사가 암 말기라고 하면 다리에 힘이 빠지고 온갖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잘 보면 그 암은 의사가 말하는 그 순간 생겼을까? 그렇지 않다. 분명히 몇 년 전에 생겼을 것이다. 의사가 말하기 전에도 암은 분명히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다가 ‘나는 암에 걸리면 안돼, 암이면 죽는다’는 분별심(걱정)이 일어나니 온몸에 힘이 빠지고 하늘이 노래지는 것이다. 이 분별심이 걱정과 두려운 생각을 불러내고 그 생각의 습관대로 화가 나고 힘들어지는 것이다.
 
암 자체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닌 사건이고 사실일 뿐이다. 암에 걸린 환자가 많아지면 의사나 약사는 좋아할 것이다. 암을 있는 그대로 하나의 사건이라고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으면 그 다음의 일 처리가 쉬워 지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싫다고 하는데 장례식장이나 장의 용품사업을 경영하시는 분은 사람이 많이 죽어야 돈을 번다고 좋아한다. 내 가족이 죽으면 다시는 못 본다는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에 분별심이 일어나서 슬픈데, 의사나 장례 지도사들은 같은 주검을 보더라도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으니 그냥 하나의 일어나는 사건으로 편안하게 일 처리를 한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이고 물이 들어 있는 물 컵 속에 젓가락을 넣었을 때 굽어보이지만 젓가락을 곧은 것이고 기차 길을 먼데서 보면 붙어 보이지만 아무리 가까이 가도 절대로 붙지를 않는다. 이러한 것처럼 이 분별심, 욕심의 정보가 고스란히 의식의 저장고인 기억으로 저장되어 사건의 본질은 제대로 보지를 못하게 되어서 화가 나고 삶이 힘이 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일어난 사건을 행, 불행, 화를 만들어 가는 틀인 것이다.』
 
생각과 분별심 그리고 기억이 균형이 제대로 잡히면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자신의 마음이 평화로워져서 그 대상 역시 원래의 평화로운 상태, 완전원만한 상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사건을 제대로 보면 화가 생기지 않고 저절로 없어지며, 있는 그대로 ‘화’를 뛰어넘는 방법이다.
 
몇 달 전에 초등학교 5학년 여자 아이와 어머니가 상담을 왔다. 어머니 말씀이 아이가 거짓말을 너무나 잘한다고 하였다. 바로 탈로 날 일도 거짓말을 한다고 몹시 속상해 하셨다. 혼을 내고 윽박지르고 해도 고쳐지지를 않는다고 울먹였는데 어머니를 옆방에 보내고 아이에게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물어보니 ‘어머니가 마음 아파 할까봐 성적이 떨어진 것을 속이고 자신이 실수 한 것을 속였다.’고 한다. 방법은 잘못 되었지만 아이에게는 어머니의 마음을 살피는 사랑이 나오려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아이의 사랑을 몰라주니 어머니가 인정 할 때 까지 계속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아이가 자신만 알던 유아적 시기에서 성장하여 자신의 영역이 넓어지기 시작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이 나오려는 시기인데 아직 방법이 서툴러서 그렇습니다. 아이의 사랑이 나오려는 훌륭한 시기이니 거짓말 한 것은 제쳐 두고 사랑에 대해서 칭찬하세요’ 라고 했다. 한 달 쯤 있다가 어머니가 다시 오셔서 하는 말이 아이의 거짓말이 점점 줄고 이제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기뻐 하셨다.
 
이렇듯이 하나의 사건이나 사물의 본질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것이다. 일어난 사건은 본질을 제대로 알고 대처만 바르게 한다면 항상 좋은 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
 
『일어난 일, 사건은 ‘삶의 방향을 항상 좋은 쪽으로 가라’고 하는 신호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실재 생활에서 알아차리기가 너무나 어렵다. 부모들은 이러한 경우에 아이들이 반항을 한다고 한다. 반항이 실제로 무엇인지 흔히 이루어지는 가정에서의 실재 교육을 아내의 입장에서 한번 보도록 하겠다.
 
살다 보면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고 말도 잘 안 듣고 반항을 하고 때로는 남편도 마음에 안 들 때가 많이 있을 것이다. 모든 가정에서 자주 일어나는 이런 상황에서 엄마들의 대처 방법을 보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고 공부하라고 혼을 내고 제발 말 좀 들으라고 하며 때리기도 하고 아이와 혹은 남편과 싸우기도 한다. 그런데 잘 고쳐지느냐 하면 거의 고쳐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이 되면 지쳐서 포기하고 살게 된다. 이것을 ‘반항’이라고 하는데 이는 반항이라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 반항이라는 것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사랑이 다른 형태로 가면을 쓴 상태, 사랑이 변형된 상태, 사랑이 숨어버려 외로움이 나타난 상태가 바로 반항이라는 이름의 ‘사랑’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사랑이 나타난 것을 부모 방식 또는 아내 방식으로 한쪽으로 왜곡하여 잘못 보아서 ‘저 아이는 말을 듣지 않는다. 내 남편은 속을 썩인다’며 반항으로 보는 것이다. 그 반항은 반항이 아니라 사랑을 호소하는 것이다.
 
'엄마, 나 ** 에 마음이 아파, 너무 힘이 들어!‘
‘ 나 ** 하면 정말 잘할 거야.’
‘여보, 나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외로워!’
‘ 당신의 따뜻한 눈빛이 너무 그리워!’
‘제발 당신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보세요,’
‘당신에게 들어 있는 큰 사랑을 끄집어내서 훌륭한 사람이 되세요!' 하는 호소, 울부짖음이다. 엄마나 아내가 아이나 남편을 보는 관점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반항은 계속해서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보면 한 아이가 아침에 학교 가는데 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었다. 이 아이는 엄마가 아프니 학교서 온종일 걱정을 하다가 집에 오는 길에 인스턴트 죽을 사가지고 와서 부엌으로 가서 죽을 끓여서 엄마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고 들어가다가 발이 걸려 넘어져 죽을 침대에 쏟아 버렸다. 자, 이때 엄마의 반응이 어떨까?
 
“너 왜 그러니?, 너 아니어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너까지 왜 그래.
너 내가 아파 누워 있는 것이 안 보이니?
너는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거야!” 대개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다.
 
물론 죽을 쏟은 행위는 실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아프기에 온종일 걱정하다가 죽이라도 끓여 주어야지 하는 ‘사랑의 표현’인데 엄마가 그 사랑의 싹을 말로, 표정으로 잘라버렸다. 아이에게 위대한 사랑이 나오려고 할 때 그때를 놓치고 심지어 그 사랑의 싹을 잘라 버리는 경우다. 그 싹이 자라 슈바이처가 될지 테레사 수녀가 될지 만델라가 될지 모른다.
 
아이나 남편은 엄마를, 아내를 기쁘게 하고 싶은 것을 엄마가 드러난 겉모습을 잘못 보고 ‘속을 썩인다. 반항한다.’고 호도해 버리고 그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이 없어지고 그다음부터는 이러한 사랑의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어머니의 그릇된 말 한마디가 오히려 사랑의 싹을 잘라버리고 반항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또 엄마가 바쁘게 설거지할 때 아이가 옆에 와서 칭얼거리며 이것저것 해 달라고 할 때 뭐라고 하시나 하면
“너 왜 그래! 지금 엄마 바쁜 거 안 보여!”
당연히 그럴 수 있죠. 그러나 아이는 새로운 창의적인 의문이 일어나서 인데 엄마의 행위를 보고 ‘엄마는 항상 바쁜 사람이구나. 나를 귀찮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성적이 조금 올라서 기뻐할 때, 아이가 기뻐하는 본질을 모르고 어머니의 분별심 때문에 ‘더 잘하지, 더 노력하지’하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한다. 이러한 채근이나 비난이 아니라 작은 것이지만 “너 정말 잘했구나! 애썼다. 수고했다. 너한테 그런 소질이 어디에 있었니?” 하며 인정해주고 칭찬하며 그 싹을 키워 가는 것이다.
 
죽은 쏟았지만
‘어떻게 죽을 끓일 생각을 다 했니? 너한테 정말 예쁜 마음이 있단다. 고맙구나.’ 하는 엄마가 멋지지 않나요. 이렇게 할 때 아이가 훌륭해지는 것이다. 
 
일어난 사건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화를 내며 이러한 습관적으로 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아이의 천재성이나 사랑의 싹, 배려의 싹을 다 잘라 버린다. 그래서 부부가 먼저 통제력을 회복하고 나타난 겉모습이 아닌 사건의 본질인 실재 내면의 사랑을 봐 줄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평상시 부부간에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통제력을 연습하고 그 신뢰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그렇게 생활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천재적인 무한한 싹을 알아주고, 인정하고, 사랑으로 충족시켜야 아이가 그것을 배우게 되고 부모가 인정하는 만큼 아이는 천재성, 사랑, 무한 능력을 환경에 나타내게 된다.
 
이것은 어려운 것 같지만 쉬운 일이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당연한 것에 감사하기 시작하면 너무나 쉽게 되지만, 사건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속아서 겉으로 드러난 가짜인 반항이 원래는 사랑인 것을 모르고 진짜 반항이라고 속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화를 내면 무엇 보다 자신이 제일 먼저 피해를 본다』
 
이제는 절대로 속지 말자!
자신을 괴롭히는 사건이나 문제들은 불행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은 가면을 벗으면 해맑은 천사의 모습인 것이다.
 
모든 것이 사랑이며 사랑을 꺼내라는 신호다.
일어난 사건의 본질은 제대로 알게 되면 화가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부부의 사랑이 회복되며 그로 인하여 행복하고 원만한 가정이 이루어지면 자녀에게 반드시 무한한 천재성이 나타난다.
그러면 부모가 스승으로 자리 잡게 되고 아이들은 올바른 도덕성과 훌륭한 품성을 지닌 21세기 교육의 방향에 맞는 창의성이 있고 품성이 좋은 사람, 감성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나게 된다.
 
『내 아이의 교육은 절대로 학교나 국가 당국에서 책임지지 않는다.
 
각 가정에서 부모가 할 수 밖에 없다.
부모가 온몸으로 아이의 훌륭한 천재를 끄집어내고 균형 감각있고 존경 받는 아이들의 스승이 되어야 한다.』
 
『나의 꿈은 당신의 행복입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NewsShare 뉴스쉐어.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