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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폭력 예방에 최적화 된 ‘행복한 1분 꾸지람’
황수남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6/08/16 [19:55] ⓒ NewsShare 뉴스쉐어
황수남 칼럼니스트
▲ 황수남 칼럼니스트     ©

자녀들 훈육을 하는데 벌이 진정 필요한가를 고민해 봐야 하고 벌이 아니고는 자녀 교육을 할 수가 없는지도 알아 봐야 한다. 대개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잘못된 행동이나 규범을 깨트리는 행위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꾸짖어 왔고 혼을 내고 벌을 주어 왔다. 때리고 모욕을 주고 공포 심리를 조장하거나 달래고, 잔소리도 하며 때로는 보상을 주기도 해 봤으나 별로 효과가 없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꾸짖고 때리는 일을 아주 거칠게도 해 봤지만 부모가 원하는 만큼 자녀들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된다고 푸념을 하고 포기를 하기도 하며 크게 힘들어 한다.

 

 『벌은 절대로 효과적인 훈육이 되지를 못 한다』

 

특히 부모 자녀간의 벌은 부모 자녀간의 사이를 멀게 하고 신뢰 관계를 파괴시키는 아주 나쁜 악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부모 자식 간에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까지 치닫게 한다. 벌과 훈육은 다른 것이지 절대로 같은 것이 아니다. 훈육은 인간 안에 완전하고 원만하며 무한한 천재성이 이미 내재해 있다고 인정하고 끄집어내는 것이고 벌을 인간은 무지하기에 외부에서 집어넣어야 천재성이 나온다고 하는 아주 다른 교육관에서 출발을 한다. 이미 들어 있는 것은 실존이기에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쉽게 나오는 것이고 천재성이 없다고 인정을 하고 억지로 가르쳐서 집어넣으려 하는 교육법은 ‘강제’라는 방법이 동원이 되고 ‘벌’이라는 물리적인 억압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훈육은 이미 들어 있는 천재성을 인정하고 끄집어내는 참다운 인출식 교육이며 올바른 가르침을 뜻 한다』

 

다시 말해 아이 교육을 잘 시키려면 아이들은 어리기에 아무런 분별이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들어 있는 위대한 생명은 완전 원만한 선(善)이기에 그 선(善)이 내재해 있음을 인정하고 싹을 발견해서 불러내면 된다. 아이들에게 벌이 반드시 필요 한 것이 아니다.

 

『벌의 사전적 의미는 벌은 어떤 잘못이나 거역 또는 규칙 위반 등의 이유로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손해를 입히거나 행동을 제한하고 심지어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아직 사회의 규범과 약속에 익숙하지 않고 미흡하기에 여러 가지 선택과 그들의 행동에 있어서 자주 잘못을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올바른 지도와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이들은 성장함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아이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바른 훈육이 필요하다. 벌이 없이도 아이들은 얼마든지 훌륭하게 훈육시킬 수가 있다.


벌의 효과

아이들에게 내재해 있는 위대한 생명을 씩씩하고 활기차게 바른 길로 자라나게 해야 한다. 이 바른 길로 자라나게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게는 이미 무한의 천재성이 들어 있다. 이 무한의 천재성은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항상 활기차게 움직이며 표현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 아이들은 뭔가를 하지 않고는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것은 생명의 본질이 끊임없이 표현하려는 움직임(動)이기에 그렇다. 이 흘러넘치는 위대한 생명을 탈선하지 않게  바른길 위에 올려놓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어른들은 이 흘러넘치는 생명의 힘을 바르게 이끄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하고 꾸중을 하거나 벌을 주는 행위를 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위대한 생명의 생장(生長)을 방해하는 일이다. 회초리나 꾸중은 생명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한다. 아이의 그릇된 경향을 꾸중으로 억누를 수는 있지만 아이의 내재된 훌륭함을 적극적으로 자라나게 해서 위대한 생명의 본질인 착함(善)과 옳음(眞)이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 아이들은 결코 벌이 필요 한 것이 아니다. 도움과 올바른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부모들은 쉽게 벌이나 꾸중을 선택한다. 그러나 벌은 도움보다는 해가 더 많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잘못에 대하여 적당히 위협을 가하거나 완력을 사용함으로서 아이들의 바람직한 행동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벌을 주면 결과는 빨리 나타날지 모르지만 효과는 거의 일시적이고 지속되지 않으며 더 좋지 않은 것은 아이들 인격에 치명적인 결함을 입히게 된다.

 

벌은 사회적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인류에게 가장 오래 알려진 사회적 통제 행위중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 부모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어쩌면 익숙한 과거 개인의 경험, 더 나아가 인류 역사 속에서 흔히 있었던 일이기에 당연하다고 인식을 한다. 그래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또는 아무 죄의식 없이 사용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자기 자식에게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고 사회 제도나 인식에서도 자기 자식에 대한 체벌을 묵인하는 형태이기도 하다.

 

멀지 않은 과거에는 가정교육뿐만이 아니라 학교교육에서도 벌을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었고 체벌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교육자 그리고 아동 발달에 대해 연구하는 학생, 인간 연구가들이 처벌이 인간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벌의 효과가 인간의 올바른 행동 발달에 좋지 않은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벌은 두려움과 공포심을 만들어 낸다. 인간의 천재성을 현실에 나타내는데 가장 큰 방해물은 공포심이다. 공포와 강제가 올바른 행동에 대한 촉진제로 쓰이지 못했고 보다 나은 행동을 이끌어 내지도 못했으며 가치관이 아직 습득되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 혼란이 많이 일어났고 오히려 여러 문제들이 제기 되었다. 많은 연구가들의 처벌에 대한 영향을 연구해 왔지만 결과는 비슷하게 나타났고 벌의 좋은 쪽 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벌이나 문책이 무서워서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착한 사람이 아니다. 형벌이나 꾸중이 있건 없건 착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선(善)한 사람이다. 강제나 벌이 두려워 선(善)을 행하는 사람과 스스로 선을 행하는 사람과는 나타난 모양에서는 같을지 모르지만 전자는 종(從)이지만 후자는 삶의 주인이고 지배자다. 

 

체벌은 인간의 행동을 변화 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보통 일시적이거나 짧은 기간에만 효과가 있을 뿐이고 강제나 벌이 없어지면 언제든지 좋지 않은 행동이 나오게 된다. 벌의 효과는 백해무익(百害無益)이다.

 

『나의 꿈은 당신의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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