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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어준 ‘아리랑’…그 뿌리를 찾아서
전통민요 아리랑의 유래와 얽힌 설화들
기사입력: 2017/12/30 [19:24] ⓒ NewsShare 뉴스쉐어
조민영 기자

[뉴스쉐어=조민영 기자] 아리랑은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전통 민요이자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지금도 널리 불리고 있는 노래다. 아리랑을 통해 분단된 남북으로 인해 올림픽 단일팀이 하나의 국가를 부를 수 없을 때 한 민족임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중한 아리랑이 어디서 오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부르기 시작했는지 왜 부르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답은 밝혀지지 않은 채 다양한 설들만 전해내려 오고 있다.

 

'억울한 죽음 애도 유래' 아랑설

 

먼저 아랑설은 밀양 사또의 딸인 아랑이 통인의 요구에 항거하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일을 애도한 데서 유래됐다.

 

명종 때 밀양부사의 딸인 아랑은 성은 윤씨이며 이름은 정옥이라 하고 나이는 16세쯤 되는 재기가 넘치고 자색이 뛰어난 규수였다고 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유모의 품에서 자란 아랑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런 아랑이 어느 날 유모의 꾐에 빠져 영남루로 달구경을 갔다 통인인 주기가 겁탈하려고 하자 죽음으로 정절을 지켰다.

 

이후 밀양에 부임하는 사또마다 밤마다 나타나는 아랑의 원혼을 보고 놀라 급사하게 된다. 그 러던 중 밀양 사또를 자청한 한 사또는 아랑의 원혼을 보고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게 된다.

 

아랑은 나비가 되어 자신을 겁탈하려 했던 통인의 갓에 앉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튿날 사또 앞에 불려나온 벼슬아치들 가운데 숨어 있던 범인의 갓 위에 나비가 내려앉았다. 사또의 추궁 끝에 범인은 범행을 자백했다.

 

'박혁거세의 알영 알영' 알영설

 

두 번째 알영설은 박혁거세의 비(妃)알영을 찬미해 ‘알영 알영’하고 노래를 부른 것이 ‘아리랑 아리랑’으로 변했다는 설이다. 알영천이라는 우물에 살던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진 알영은 신라의 왕비가 돼 왕을 도와 훌륭한 정치를 폈다고 한다. 이런 알영을 기리기 위해 부른 노래가 아리랑으로 전승되고 있다는 설이다.

 

'단원아리롱 불문원납성' 아이롱설

 

세 번째 아이롱설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백성들이 그의 원납금 성화에 못 견뎌 “단원아리롱 불문원납성 (원하노니 내 귀나 어두워져라, 원납소리 듣기도 싫구나)”하고 부른 ‘아리롱’이 아리랑으로 와전됐다는 설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경복궁을 중건해 왕권을 바로 잡고자 했던 대원군은 궁궐을 다시 짓기 위해 막대한 세금이 필요했다. 때문에 대원군은 억지로 기부금을 모으기도 하고, 상평통보의 100배에 해당하는 당백전을 발행하기도 했다. 또 헌금을 낼 수 없는 백성들을 강제 부역에 동원하기도 했다.
 
당시 ‘이런 혼탁한 세상에서 차라리 내 귀가 먹어서 아무것도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아리롱이라는 말이 퍼지게 됐고 오늘날 아리랑으로 전승했다는 설이다.

 

이외에도 아난리설과 아이랑설 등 많은 설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아리랑의 참된 의미와 그 출발이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분단된 현실 가운데서도 우리가 한 민족이며 하나임을 일깨워 주고, 지금도 전 세계에 퍼져있는 민족들이 서로를 그리며 부르고 있는 우리의 아리랑. 주인 된 우리들이 ‘아리랑’의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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