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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별세, 영화 같았던 그의 삶
故 최은희, 생전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장례
 
한도경 기자 기사입력  2018/04/17 [11:22]

 

▲ 최은희, 'KBS 뉴스광장' 캡처

 

16일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난 원로배우 故 최은희 씨가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故 최은희의 아들 영화감독 신정균 씨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야 한다는 영화계 의견이 많았지만 어머님 생전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17일 말했다. 

  

고인은 지난 2006년 4월 11일 남편 신상옥 감독이 세상을 떠난 뒤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으며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 인근 병원에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았다. 전날에도 신장 투석을 위해 병원에 갔다가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故 최은희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19일 오전에 진행된다.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다. 

  

영화배우 故 최은희 씨는 1926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최은희는 1942년 16세의 나이로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고,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영화 촬영 감독 김학성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1953년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사랑의 빠진 그는 1954년 새로운 부부의 연을 맺었다. 1976년까지 13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 (좌)최은희 (우)마릴린 먼로, KBS 뉴스광장 캡처

 

이후 신상옥 감독과 이혼한 최은희 씨는 1978년 1월 14일 홀로 홍콩에 갔다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일성 주석의 아들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공작원에 의해 납치됐다. 이에 신상옥은 그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홍콩으로 갔다가 같은 해 7월 19일에 역시 납치됐다. 납치된 이후 두 사람은 약 8년 동안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영화 활동을 하면서 영화 17편을 제작했고, 특히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최은희는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음으로써 한국인 최초 해외 영화제 수상자가 됐다. 

  

그렇게 약 납북 세월 약 8년 동안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그 둘은 1986년 3월 13일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 오스트리아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해 탈북에 성공했고 10년 넘게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귀국길에 올랐다. 

  

참고자료 = 위키백과


기사입력: 2018/04/17 [11:22]  최종편집: ⓒ NewsShare 뉴스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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