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이병희 여사, 50여년 만에 세상에 알려진 독립투사독립운동위해 학교 자퇴, 군자금 모집 활동 등
[뉴스쉐어=강민서 수습기자]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독립운동을 했지만 자식에게 조차 독립투사였음을 말하지 않고 살았던 이병희 여사.
이병희 여사는 1918월 1월 서울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15세에 동덕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여자상업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한 살이라도 젊어서 일본과 싸워야 한다’는 할아버지 영향으로 1년 만에 학교를 중퇴하고 만다.
학교를 중퇴한 이병희 여사는 1933년 5월 서울 종연방적주식회사에 여공으로 위장취업을 한다. 그 후 1936년 여성 근로자 500여 명을 모아 항일운동을 주도한 이유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첫 번째 옥고를 치른다. 그녀 나이 불과 19세였다.
감옥에서 나온 이 여사는 1940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가입, 박시목·박봉필 등에게 문서를 전달하는 연락책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다.
그러던 중 1943년, 먼 친척 되는 이육사 선생을 만나 독립운동을 함께 도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해 9월 이병희 여사는 독립운동을 하다 베이징 감옥에 구금된다. 한편 이육사 선생은 고향을 방문, 그해 7월 서울 동대문 형사대와 헌병대에 체포돼 북경으로 압송됐고 둘은 감옥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가 독립 운동가였던 이병희 여사. 할아버지 이원식 독립지사는 동창학교 교장으로 민족교육을 이끌어 낸 독립운동가다. 아버지 이경식 애국지사 또한 1925년 9월 대구에서 조직된 비밀결사 암살단 단원이었다.
이렇듯 3대에 걸쳐 독립 운동을 했지만 이병희 여사는 50여 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드러났다. 건국훈장 또한 1996년 79세가 돼서야 애족장 서훈을 받았다.
일제시대 노동운동을 한 이유로 자식에게 누가 될까봐 독립 운동했던 전력을 가슴에 묻고 살았던 이병희 여사. 그녀는 2012년 8월 94세 나이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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