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희 기자 기사입력  2019/04/25 [18:18]
호남선교 창시 전킨·드루 선교사… 근대화 계기 마련
1895년 3월 군산 첫발, 환자 돌보며 선교 역사 및 교육 힘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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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군산시 금동 수덕공원에 자리잡은 전킨·드루선교사 군산 첫 선교지 기념비.    © 이연희 기자

 

[뉴스쉐어=이연희 기자] 1919년 일제 그림자에 가려진 전북 군산 지역에 기독교 정신으로 교인과 학생이 주축이 돼 자주독립을 외친 3.5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기독교 정신을 뿌리내리게 한 배경에는 전킨·드루 선교사가 있었다. 

 

환자의 병든 몸과 마음을 돌보며 불모지 같던 호남지역에 복음의 빛을 밝힌 전킨·드루 선교사의 발걸음이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호남선교의 창시자인 전킨 선교사(1865~1908, W.M.Junkin 한국명 전위렴)는 미국 예수교 남장로회 소속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7인의 선교사 중 한명이다. 그는 1892년 제물포(인천)를 통해 서울로 왔고 순회선교 활동을 마친 후에 호남 쪽을 맡아 복음의 씨를 뿌리기로 했다. 

 

전킨 선교사와 함께 드루 의료선교사(1859~1924, W.M.Junkin)는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군산포 선창가(근대역사박물관과 구 군산세관 건물 사이)에 1895년 3월 첫발을 내디뎠다. 

 

두 선교사가 자리 잡은 곳은 조선시대 옥구군 북면에 위치한 군산진 자리인 수덕산. 전킨과 드루 선교사는 수덕산에 있는 초가집 두 채를 샀다. 아랫집에서는 드루 선교사는 환자를 진료했고 전킨 선교사는 윗집에 살면서 진료를 대기하거나 찾아오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다. 당시 두 초가집에는 수많은 주민이 찾아와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전킨·드루 선교사는 어느 정도 선교 활동이 익숙해지자 1896년 4월 5일 가족들과 함께 군산에 정착했다. 

 

▲ 군산 구암동산에 조성된 벽화에 소개된 전킨 선교사 모습. 말을 타고 전도활동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이연희 기자

 

진료는 배를 타고 금강과 만경강을 오르내리며 충청도 지역과 전라도 북서부, 고군산 군도까지 아우렀다. 이렇게 전도 활동을 벌여 1898년 군산 선교 기지를 궁말(현 군산시 구암동)에 마련했고 이것이 구암교회를 설립하기까지 이르렀다. 전킨 선교사는 구암교회 제1대 목사다. 

 

이어 개복교회·지경교회·송지동교회·남전교회 등 군산을 중심으로 익산·김제·서천·부여 등에 많은 교회를 설립하는 결과를 낳았다. 

 

전킨 선교사는 업적은 선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1902년부터 집에서 남학생을 모아 교육시켰는데 영명학교(현 군산제일중·고등학교 전신)로 발전했다. 아내 메리 레이번도 안방에서 여학생을 모아 교육하기 시작했는데 멜볼딘 여학교(군산 영광중·여자고등학교 전신)를 설립하게 됐다. 

 

또 예수병원을 세우는 등 군산의 교육·의료·체육·문화를 개척 발전시켜 군산이 역사·문화 근대화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드루 선교사가 세운 영명학교에서 야구부가 개설돼 군산은 우리나라에서 야구를 제일 먼저 시작한 곳이 되기도 했다. 

 

한편, 군산시는 군산 기독교 선교가 시작된 현재 수덕공원에 2017년 11월 전킨·드루 선교사를 기억하는 첫 선교지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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