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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군산농악의 뿌리, 이완재 한국국악협회 군산지부장

이연희 기자 | 기사입력 2013/01/16 [16:33]

[인터뷰] 군산농악의 뿌리, 이완재 한국국악협회 군산지부장

이연희 기자 | 입력 : 2013/01/16 [16:33]
[군산 뉴스쉐어 = 이연희 기자] 고단했던 한해의 신명을 불어넣어 주던 한국의 착한 소리 ‘농악’

자식과도 같았고 일생 전부였던 한해 농사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흥겨운 농악소리는 사람들의 시름을 씻어주고 보듬어준 매개체이자 우리 조상의 얼과 혼이 담긴 한국의 멋이다. 

국악 인생 45년을 맞은 이완재 한국국악협회 군산지부장은 전북 임실군 임실읍에서 6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나 아버지 뜻에 따라 전주 유학길에 올랐다.  

농사지을 생각으로 전주농림고등학교 진학했지만 특기장학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 농촌예술 반에 들어가 농악을 배우게 된 것이 지금의 그가 군산농악의 맥을 잇는 설장구의 명인이 된 사연이다.  

그는 전주 농고 농악단에서 끼와 탁월한 재능으로 故김병섭 선생으로부터 설장고를 사사하였고, 이명식 선생으로부터 호남우도농악을 사사 기능을 전수했다.  

고등학교 1, 2학년 당시 1968년부터 2년간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 1970년에는 대통령상을 수상해 그 공연 사진이 우편엽서로 발행되기도 했다.  

이렇게 농악으로 명성을 떨친 고등학교 졸업 무렵 1971년 일본에서 개최된 세계잼버리대회에 전주농고 농악단이 한국대표로 나가 언론에 보도되는 등 이 지부장은 장구 하나로 국내뿐 아니라 일본까지 장악했다. 

그 후 그는 1976, 1978년 2년여 동안 한국민속촌 공연단 부단장으로 발탁돼 농익은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기도 했다.

필생의 사업이 된 농악 

해방 이후 전통 농악이 보존되지 못하고 놀이에 그친 군산농악을 다시 일궈내 꽃피운 장본인이 바로 이완재 지부장이다. 

“제가 1978~79년에 군산에 오게 됐는데 풍물문화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군산은 특히 혹독한 일제강점기를 겪은 탓에 풍물이 말살되고 말았던 것이죠. 또 전두환 정권으로 올해 31회를 맞는 전북 시군농악경연대회가 당시에는 저지되기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지부장은 당시 많은 민속학자도 군산지역의 풍물은 전무하다고 말할 정도로 사라져 버린 농악을 다시 보급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결혼하고 군산에서 직장을 다녔다. 

당시 마침 회사 체육대회가 열려 몇몇 사람들과 함께 농악을 다시 할 기회가 생겼다. 그 계기로 1985년 사표를 제출하고 본격적으로 군산에 농악을 보급하기 위한 결심을 하게 됐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 농악에 전념하겠다는 결심을 가족들도 처음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결국 가족들은 이를 빨리 이해해준 덕분에 지금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녹록지 않았던 환경과 전통문화 계승이라는 소명에 비해 큰 대우조차 받을 수 없었던 척박했던 현실 가운데서 그가 처음 열게 된 연수원은 경장동의 낡은 지하건물이었다. 

“지하 건물에 연수원을 하나 마련했는데 물이 차올라 그 물을 퍼내고 어렵게 연수원을 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초등학교에서 강습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개정, 성산, 술산초교 등과 부안지역까지 포함해 17여 곳으로 특기적성 조기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농악 전수의 희망을 놓지 않게 한 후학들

어렵게 시작한 연수원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는 오래된 회원명부를 꺼내 보였다. 그가 펼쳐 보인 명부에는 빼곡히 적힌 이름들이 있었다. 

연수원을 거쳐 간 후학들만 해도 1천여 명을 훌쩍 넘는다고. 전통 농악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후학들의 이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회원명부는 그가 농악에 대한 애정만큼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보물이나 다름없다.  

아직도 함께 활동하고 있는 후학도 꽤 있고 대다수 제자도 이 지부장의 농악사랑을 전수받아 개정동, 구암동, 경암동, 수송동, 조촌동, 나운3동, 중미동, 나포면, 옥구읍, 옥서면 등 군산지역 대부분 주민자치센터와 복지센터에서 군산농악 전수를 책임지고 있다.  

또 도내 행사와 각종 대회에서도 우도가락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인터뷰하기 당시 며칠 전 단원들은 ‘제13회 국창 권삼득 선생 추모 전국국악대전’에서 설장고로 거뜬히 대상을 차지했다.  

그는 이와 같은 후학들의 활발한 활동 모습을 볼 때 재밌고 가장 뿌듯함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설장고 전수에 큰 노력을 기울여 1999년 문화관광부장관 표창을 받은 바 있다. 또 2004년 대한민국 현대 인물사 문화예술편에도 군산농악 발전에 힘써온 그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의 고장 군산을 세계에 알리는 홍보대사의 역할과 후학 전수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농악의 맥을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 과제

호남우도농악을 이어가고 있는 군산지역 풍물단원 중 가장 젊은 층이 40대다. 그만큼 젊은 층의 전수자들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그의 바람은 국악에 대한 우리나라 교육계의 관심과 지원이다. 

(※ 군산농악은 호남우도농악으로 분류된다. 농악은 각 지역에 따라 영도가락, 영남가락 등 이름이 붙여지고 호남지역은 좌도와 우도가 나뉘게 된다. 좌도농악은 호남의 무주, 진안, 장수, 순창 등 산간지역에서 발달한 농악을, 우도가락은 정읍, 김제, 군산 등 평야 지대에서 발달한 농악을 일컫는다. 특히 군산지역은 우도가락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연수원에 있는 연령층 가운데 가장 젊은 층도 40대입니다. 조상의 예술의 혼이 담긴 음악을 어떻게 보존하고 이어가야 할지가 지금 가장 큰 과제입니다. 국악에 대한 교육계의 관심이 절실할 때입니다” 

특기적성 교육 차원에서 방과 후 활동 등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농악을 접할 기회는 열려있지만, 그 맥이 쉽게 끊어지는 경우가 다반사.  

특히 ‘채상돌리기’ 같은 전문 기술은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한 연수가 필요하지만 중·고등학생이 되면 입시와 학업에 치여 자연스레 농악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아 후세대 전수는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다.  

이 지부장은 그나마 예술고등학교과 같은 특성화 학교가 설립돼 국악의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이 또한 기술적인 부분에만 치중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된다고.  

이 지부장이 기억하는 1994년은 ‘국악의 해’로 전통 예술 발전에 큰 기대를 걸었던 한 해였다. 당시 국악은 많은 홍보로 국민의 큰 관심을 끌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지속 사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해를 넘기고 나니 금세 잠잠해지는 씁쓸함을 남겨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군산농악을 지키는 이들  

호남우도농악을 지키고 있는 전수관은 사무실 건물 지하에 자리하고 있다. 

전수관은 무엇보다도 흥겨운 가락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희로애락의 혼을 담아내는 농악을 보급하고 전수하는 장소이자, 전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많은 후학을 배출해 낸 전수관은 생각보다 좋은 시설을 갖추거나, 넓은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농악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얼이 이곳으로부터 시작돼 군산농악의 뿌리를 올곧이 지탱하고 있었다.  

전수관을 소개하는 이 지부장은 전통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농악인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는 끝으로 국악을 바라보는 입장의 사람들에게 전통 예술의 가치를 볼 수 있는 마음과 시선을 갖고 지켜봐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리는 국악이 좋아서 하는데 바라보는 사람은 과연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응원해주시고 우리 고유 전통 음악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 단지 눈앞에 펼쳐지는 하나의 퍼포먼스가 아닌 농악의 깊은 가치와 우러나는 의미를 바라봐주길 당부하는 이 지부장의 모습에서 농악을 시작하고 걸어온 45년간의 농악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과 그가 겪은 애환이 느껴졌다.  

“풍물을 막 시작한 사람이 ‘풍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존경스러울 따름이다’라고 말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풍물(농악)에는 전통 예술의 가치와 오랜 세월 속에 노력이 녹아있습니다. 어렵게 갈고 닦은 기량을 많은 대중이 고귀하게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이완재 지부장이 이끌고 있는 한국국악협회 군산지부는 ‘진포예술제’, 청소년 국악 신인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는 ‘군산전국학생 전통예술경연대회’, ‘군산시 읍면동 및 동아리 화합 농악대회’ 등 다양한 사업과 공연을 전개하며 전통계승과 국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기원하기도 했던 농악, 군산농악이 새해 빌었던 모든 이들의 희망을 이뤄내고 이를 알리는 소리가 되어 감사와 풍요로 채워지는 한 해가 되길, 또 올해는 그의 바람처럼 군산농악을 이끌어나갈 전수자도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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