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지 기자 기사입력  2012/04/27 [17:16]
“단종, 이제 평온히 잠드소서”
단종과 충신들의 넋 기리는 ‘제46회 단종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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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제196호로 지정된 조선제6대 단종의 장릉.                                                                                © 이예지 기자

(뉴스쉐어=강원본부) 나름 역사의 시대적 배경지식을 얻을 수 있어 사극을 즐겨본다던 친구에게 조선시대 한 임금에 대해들은 적이 있다. 대략적인 이야기만 들었으나 조선시대 역사 중 이보다 더 한 맺힌 임금이 있을까 싶었다. 당시 못다 들은 단종(1441~1457년)의 애달픈 사연을 헤아려보고자 그가 잠들어 있는 강원도 영월 장릉으로 향했다.

비운의 왕 ‘단종’

▲ 단종영정.                           (사진=영월군 제공)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재위 1452∼1455)은 태어나자마자 하루 만에 산후병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어린 5살 때 할머니마저 세상을 잃었다. 기댈 데라곤 아버지인 문종 밖에 없었던 단종. 그러나 문종도 왕위에 오른 지 2년 3개월 만에 승하, 결국 12살 왕위에 오르게 된 단종이다.
 
그 전에 문종은 자신이 병약함을 알고 측근인 영의정(황보인)과 우의정(김종서)을 부른다. “나 없이 혼자 남게 될 어린 세자가 걱정되니 왕위에 오를 때 잘 보필해 주게나”

당시 어린나이로 즉위한 왕은 수렴청정이라는 대리정치제도를 거쳐야 했다. 어린나이로 왕위에 오른 단종은 수렴청정을 해야 했지만 할머니,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실질적으로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임금의 권리가 약해지고, 신하들에 의해 정세가 좌지우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단종의 작은 아버지 세조(수양대군)가 ‘황보인과 김종서 등이 아우 안평대군을 추대해 종사를 위태롭게 하려 했다’는 명분으로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킨다. 당시 단종의 최측근이었던 황보인과 김종서 등 충신 70여명이 세조에 의해 몰살당하고, 군국의 모든 권력을 세조가 장악한다. 그 후 허울뿐인 왕위에 머물러 있던 단종은 결국 1455년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이듬해, 성삼문과 박팽년, 하위지 등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돼 처형당하고 만다. 1457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됨과 동시에 부인 정순왕후와 생이별을 하게 된다. “작은 아버지! 어찌 저를 이리도 비참하게 만드십니까! 왕의 자리까지 내어주고 다 주었는데, 이젠 내 사랑하는 부인마저 앗아가려 하십니까! 어찌 저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입니까… 흑흑”

단종은 그해 여름 홍수로 청령포 강물이 범람해 영월읍내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긴다. 또다시 세조의 동생이자 단종의 숙부인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 운동을 시도하다 실패로 돌아가 사약을 받게 되고, 단종은 신분 특권을 빼앗겨 노산군에서 폐서인으로 강등된다. 이후 단종은 세조의 명에 따라 사약을 받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다.


▲ 엄흥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세워진 엄흥도 정여각.       © 이예지 기자
다시 찾은 이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세조의 엄명에 의해 단종은 죽은 후에도 쉬이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영월의 실무행정을 총괄했던 엄흥도가 목숨을 내놓고,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둔다.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마땅히 안치할 곳이 없어 시신을 지고 엄씨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동을지산 자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음력 10월, 추운 겨울날 산을 오르다 지친 엄흥도는 지게를 내려놓고 쉴 곳을 찾던 중 소나무 밑 노루가 앉아 있다 달아난 곳에 눈이 녹아 있어 그곳에서 잠시 쉬게 된다. 다시 지게를 지고 가려던 찰나 지겟다리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자 엄흥도는 본 자리를 명당이라 여기고 앉았던 자리에 단종의 시신을 암장한다.

세월이 흐른 뒤, 영월에 부임하는 군수들이 연달아 변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던 중 박충원이라는 자가 용기를 내어 영월군수로 부임한다. 어느 날, 그의 꿈에 혼령이 나타나 “애달픈 단종의 울음소리 산 넘어 들려오는데, 알아주는 이 하나 없구나. 눈을 감아도 감은 것 아니니 이 일을 어이할꼬”라며 단종이 암장된 곳을 알려준다. 단종의 시신을 찾은 박충원은 단종 임금의 봉분을 정성스럽게 조성한다. 그것이 지금의 장릉이다.

실제 단종 임금의 묘소가 알려진 것은 1517년. 이후 1681년 단종은 서인의 신분에서 노산군으로 추봉된다. 중종 때부터 조정에서 단종의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지면서 선조 때 상석과 표석, 장명등, 망주석이 세워졌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장릉이라 일컫는다. 육신은 죽어서도 영혼은 세상을 떠나지 못했던 단종, 꼬박 241년 만에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현재 장릉은 사적 제196호로 지정돼 있으며, 지난 2009년 6월27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조선왕릉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단종 장릉. 예를 갖추듯 울창한 소나무들이 능을 향해 절하며 길을 내주고 있다. 따스한 봄볕아래 고요함까지 더하니 이젠 단종의 슬픔과 탄식도 평온히 잠든 듯하다.
 
▲ 제46회 단종문화제가 오는 29일까지 개최된다.                                                                          (사진=영월군 제공)

단종과 충신들의 넋을 기리다

영월군민들은 단종이 왕으로 복위된 1698년부터 장릉에서 해마다 그의 넋을 달래기 위한 제향을 지내왔다. 지난 1967년 4월 단종제향일부터는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단종문화제로 승화시켜 오늘날 대한민국 대표 전통문화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올해로 46회를 맞이한 단종문화제는 오는 29일까지 장릉과 동강 둔치, 영월읍 일원에서 펼쳐진다.

오는 28일에는 무형문화재인 단종제향을 비롯한 충신제향이 거행된다. 단종제향은 1516년(중종 11년) 단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내던 제사를 시작으로 조선 왕실의 후원을 통해 봉행됐던 국가적 제례다. 1698년(숙종 24년)에 이르러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으로 칭하면서 왕실 제례로 확립됐으며, 올해로 315회를 맞이하는 단종제향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왕릉에서 제향을 올리는 유서 깊은 유교식 제례다.

단종은 조선조 역대 왕 중 유일하게 장례를 치르지 못한 왕이었으나 승하한지 550년 만인 지난 2007년 영월군민의 정성들이 모여 영조국장도감의궤에 근거해 국장을 치른바 있다. 이후 매년 단종문화제 기간 중 조선시대 국장을 재현하고 있다. 오는 2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이어진다.

이 외에도 칡줄다리기와 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을 비롯한 다채로운 체험·부대행사가 펼쳐진다. 전통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전통문화축제 단종문화제를 통해 새로운 문화습득을 할 수 있는 신선한 체험의 기회가 제공될 것이다.
 
강원본부 = 이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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